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 독립 전쟁 (문단 편집) == 여담 == * >오늘은 어떤 중대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조지 3세]], '''[[독립기념일(미국)|1776년 7월 4일]]''' 1776년 7월 4일 미국 독립선언문 발표일에 영국왕 조지 3세가 일기장에 쓴 글이라는 미국에서 꽤 유명한 속설이지만, 사실 조지 3세는 [[일기]]를 쓰지 않았다. 물론 일기를 썼다고 해도 전보조차 없던 시절이라 미국에서 [[미국 독립선언문]]이 발표된 당일에 영국까지 소식이 전해졌을 리가 없으니 이상한 일 아니다. 미국 독립 선언서가 [[영국 의회]]에 도착한 것은 1주일 뒤인 7월 11일이고, [[조지 3세]]가 이를 접수받은 것은 다시 이틀 뒤인 7월 13일이었다고 한다. 미국 독립선언문이 영국에 도착한 날, '''당연히 영국은 발칵 뒤집어졌다.''' 이 일화는 원래 [[프랑스 혁명]] 당시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이 일어난 1789년 7월 14일 [[루이 16세]]의 일기장에 “rien”(아무일 없다)이라고 쓴 것이 미국 버전으로 와전된 것이다. 이쪽은 실화이며 해당 문구가 쓰여진 루이 16세의 일기장도 현대에 남아 있다. * 놀랍게도 100세 넘게 장수한 노병들의 사진들이 있다. [[파일:Q9QhzvT.jpg|width=200]] 가장 유명한 인물은 레뮤얼 쿡이며 브랜디와인 전투와 [[요크타운 전투]]에 참전한 경험이 있다. 각각의 발발년도가 무려 1777년과 1781년이다. 생몰년일은 '''[[1759년]]''' [[9월 10일]] - [[1866년]] [[5월 20일]]인데 어느 정도냐면 '''[[나폴레옹]]'''보다 10년 먼저 태어난 거다. '''[[|미국의 탄생]]을 위해 싸웠고 [[남북전쟁|미국의 통합]]을 직접 눈으로 본 셈이다.''' 레뮤얼 쿡이 얼마나 오래 살았나면 한국 기준으로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사도세자가 사망한 [[임오화변]] 사건 3년 전 '''[[영조]] 35년'''에 태어나서 [[제너럴 셔먼호 사건]], [[병인양요]]가 일어난 해 '''[[고종(대한제국)|고종]] 3년'''에 사망한걸 생각하면 체감이 확 온다. 현대 한국사로 비유하면 쿡은 독립군에서 복무한 후, 광복 후 17명의 대통령을 본 셈인데, 대한민국은 광복 이후 2022년 1월 기준으로 불과 12명의 대통령이 거쳐갔다.[* 다만 대한민국은 중간에 독재정권이 들어선 영향이 커서, 대수로만 따지면 쿡의 경우는 20대, 대한민국은 2022년 1월 기준 19대이다. 대략 1920년대 후반에 태어나서 10대 후반에 독립군에 참여하고, 2022년 새 대통령 취임을 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356524/Faces-American-revolution-Amazing-early-photographs-document-heroes-War-Independence-later-years.html|#]] 이들의 더 많은 사진은 위 사이트 참고. 대부분 100살을 넘겼다! * [[미군]]은 수많은 전쟁에 참전했는데, 양측 합쳐 1천명 이상 동원된 대규모 전쟁 중 '''[[유니크|미군의 사상자가 더 많은 유이한 전쟁 중 하나다.]]''' 당시 세계적인 초강대국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영국)을 상대로 오합지졸이 태반인 미군이 싸웠기 때문. 남은 하나는 [[미영전쟁]].[* 둘 다 영국이 적이었다는 게 특징.] [[1차 대전|1차]], 2차 대전은 물론 베트남전, [[걸프전]] 등 모두 상대 군인들은 미군보다 높은 손실을 입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이 교환비 미군 대 독일군 = 1 대 1.4 로 그나마 가장 높은 교환비를 기록했다.[* 물론 독일이 통상적으로 전장에서 어드벤티지를 가지는 방어자 입장인 것도 컸지만, 압도적인 제공권 + 포병 + 병력 열세인 상황에서 1:1.4이라는 교환비를 기록한건 대단한 일이다.][* 더군다나 미군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시작한 1944년은 이미 독일의 역량 및 질적인 면에서 심각한 차질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당장 동부전선에서는 소련과의 전쟁에서 1:5 이상의 압도적인 교전비를 기록하다 1944년부터는 교전비가 1:2 미만으로 내려오는 신세로 전락하던 때다.] * 독립전쟁 당시 [[흑인]] 노예들도 참전했다. 독립파와 [[왕당파]]로 나뉜 식민지 주인들처럼 이들도 둘로 나뉜 것. 단순히 주인을 따라 군대에 입대하기도 했지만,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주인으로부터 도망쳐서 상대 진영에서 복무한 사례도 있었다. 미군과 영국군 양측 모두 흑인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 노예 신분의 해방과 봉급을 조건으로 모병하였기 때문이다. 독립파 흑인 중 유명한 참전자로는 벙커힐 전투 때 영국군에게 포위당하자 기지를 발휘해서 영국군 지휘관을 저격하고 동료들과 함께 탈출한 피터 세일럼(Peter Salem)이 있다. 영국군에서 복무한 흑인 중 미국 노예주로부터 탈출한 노예 출신 흑인들의 경우, 본래는 종전 후 조약에 따라 미국 측이 이들을 붙잡아서 원래 노예주인들에게 되돌려주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영국군 측은 이들의 신분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지켜서 이 영국군 출신 흑인 및 가족들은 [[영국령 캐나다]] 등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미국의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미국독립전쟁에 흑인들도 참여하여 영국과 싸웠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 훗날 [[미국 해군]]은 [[렉싱턴급 순양전함|순양전함]],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순양함]], [[요크타운급 항공모함|항공모함]]의 이름에 독립 전쟁의 전투 이름을 붙인다.[* [[새러토가]], [[렉싱턴급 항공모함|렉싱턴]], [[요크타운(항공모함)|요크타운]],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타이콘데로가]], [[에식스급 항공모함|벙커힐]], 트렌턴, [[에식스급 항공모함|베닝턴]]] * [[뉴욕]]에서 [[9.11 테러]]로 무너졌던 [[세계무역센터]]의 재건 과정을 통해 새로 세워진 [[제1세계무역센터|제1동]]의 높이가 1776피트인데, 여기서 1776은 바로 '''이 전쟁을 통해 미국이 독립한 1776년'''을 뜻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